오래된 연인들, 나는 너에게 질렸어
연차가 쌓일수록 좋은 것은 월급과 친구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오래된 연인들에게 묻는다. 아직도 설레고 그래? 아니,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이 돌아온다. 어떤 잠꼬대를 하는지, 아무 이유 없이 소리를 꽥 지를 때는 어떻게 달래줘야 하는지 아는 연인들은 이제 서로가 따분하다.
연애 초기에는 상대방의 모든 것이 궁금해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인 상태가 된다. 새로 알게 된 버릇이나 취향들을 자신과 이리저리 맞춰보며 우리는 운명이라고 확신하는 놀이도 다 초기에 하는 일이다. 발이 붕 뜬 것 같은 설레임이 지나가면,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도 지겨워지면, 우리는 상대방에게서 멀어지려고 한다. 질렸다고 말하면서.
질렸다는 말을 풀이하면 이 정도가 될 것 같다. 나는 너의 성격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 나는 이제 모든 경우의 수를 파악했어. 그래서 재미가 없어. 내가 모르는 미지의 인물을 탐구하고 싶어. 궁금해하고, 설레고, 작은 것에 기뻐하고 싶다고! 이 말은 반쯤만 맞다고 해두는 것이 좋겠다. 물론 그런 부분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타인에 대해 완벽히 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서로에 대해서 백 퍼센트 알고 있다고 생각한 부부들도 막상 상담실에 도착해서 기함할 듯이 놀라곤 한다. ‘다 안다고 생각하는’ 오해에 빠져 살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아채기 때문이다. 늘 날카로운 말로 사람들을 상처 입히는 사람이, 사실은 솔직하지 않으면 모든 인간관계가 부서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강박에서 비롯된 성격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미움에서 한 발 물러나게 된다. 그 사람과 나와의 오랜 관계를 뒤돌아보며 낡고 길었던 아픈 고리들이 조금씩 끊어지게 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오래된 연애가 재미없어지는 이유는, 이제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 말은 ‘나는 노력할 만큼 했어’ 라는 불만의 표시이기도 하다. 스무번 넘게 읽은 책처럼 어느 부분을 펼치면 대충 어떤 내용의 문장이 있을지 알 수 있으므로. 특별히 기를 쓰고 공부하거나 포스트잇으로 표시해 놓지 않아도 그 동안 축적된 기억들로 대충 눙치고 지나갈 수 있으므로.
하지만 서로가 지겨워지는 순간은 사랑이 끝났기 때문이 아니라, 상대방을 더 깊게 이해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 사람도 잘 모르는 그 사람의 내부를. 스무번은 글자를 읽었다면, 다시 스무번은 그 안에 숨겨진 은유들을 발굴해 내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시 스무번은 먼지를 털고, 연대기를 측정하고 …. 해야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일단 헤어지는 것은 다음으로 미뤄두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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